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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사 바로 잡아야 한다.
밤비 김용수
2008. 2. 1. 17:45
제목 / 한국사 바로 잡아야 한다.
김 용 수/ 논설위원
소한추위와 폭설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 혹한 속에서도 잊을 수 없고 잊혀지지 않는 치욕의 한국사가 떠오르고 있다. 아니 저 하얀 눈발 속에 가슴 시리게 되새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민족은 일제치하의 더럽고 추한 한국사를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울 수 없고, 잊어버리고 싶지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더 이상의 치욕적인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서도 아니 될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당시의 한국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절치부심하고 살아간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한국사를 상기해 보자.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한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한국의 역사문화를 축소, 말살, 왜곡했으며, 약소국, 열등민족으로 역사를 조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61년이 지난 오늘에도 일제가 조작해 놓은 역사를 그대로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생각하면 민족정기를 잃어버린 한심한 민족으로 오인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민족의 정신세계까지 의심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부터 한 가정의 가정교육은 가족원 개개인의 가족관. 이성관. 인생관. 종교관. 문화관 사회관. 국가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역사문화 교육은 국민 개개인의 인생관. 사회관. 국가관. 민족 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민족정신을 결정하며 민족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은 유혹과 고난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올바른 역사문화교육을 받은 민족은 자국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가지며, 타 민족에게 동화되어 쉽게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 도덕 등의 교과서가 가진 문제점을 살펴보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회장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인 정무총감이 겸임했고, 고문에는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등이 임명되었으며, 위원으로는 이능화. 어윤적. 최남선 등이 활동했다고 한다. 또 고려ㆍ통일신라ㆍ통일신라 이전 시대의 편찬의 실무책임자는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사학과 교수인 이마니시류(今西龍)와 이병도 이였다고 한다.
특히『조선사』에는 신시는 물론 고조선(단군조선), 북부여, 부여의 역사를 말살하고, 위만조선ㆍ한사군이 한반도 북부를 식민지배 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전반기 역사는 말살하거나 부정해 약소국의 역사로 조작했다. 더욱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4~5세기가 돼서야 겨우 고대국가로 진입한 것으로 왜곡했다. 따라서 한국의 환웅천왕의 신시, 고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부여, 고구려, 백제의 역사문화에 관련된 교과서들은 이마니시류(今西龍) 등의 일제식민사학자들과 이병도의 등의 영향력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고조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종서 박사(중앙대. 사학과 강사)는 객관적이고도 실증적으로 왜곡된 한국사를 밝혀내고 있다. 즉, “신시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한 역사이고, 홍익인간은 단군의 건국이념이 아니라 신시의 건국이념이다. 또 준 왕의 조선과 위만조선은 고조선이 아니고, 위만조선의 수도는 왕검성이 아니며, 위만조선과 낙랑ㆍ현도ㆍ진번ㆍ임둔군 등의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해모수는 주몽의 아버지가 아니며, 주몽은 동명 왕이 아니라 추모 왕이고, 북부여ㆍ부여의 역사가 동부여 역사로 축소ㆍ왜곡되었고, 광활한 중국 동부지역을 식민지배한 백제의 역사와 고구려 역사가 약소국의 역사로 축소ㆍ말살ㆍ왜곡되었다.”는 등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축소. 말살. 왜곡되어 왔는데도 이를 추종하는 폐쇄적인 학문풍토가 끈끈하게 이어지는가 하면, 이를 밝혀내는데 최선을 다하는 참역사문화연구회의 활동이 대조를 이루는 현실이다.
아무튼 모든 역사학자와 교수들은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잡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저 하얗게 쌓인 눈밭 위에 하양 양심을 펼쳐두고 하양 학설을 펼쳐야하지 않을 까 싶다.
김 용 수/ 논설위원
소한추위와 폭설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 혹한 속에서도 잊을 수 없고 잊혀지지 않는 치욕의 한국사가 떠오르고 있다. 아니 저 하얀 눈발 속에 가슴 시리게 되새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민족은 일제치하의 더럽고 추한 한국사를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울 수 없고, 잊어버리고 싶지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더 이상의 치욕적인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서도 아니 될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당시의 한국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절치부심하고 살아간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한국사를 상기해 보자.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한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한국의 역사문화를 축소, 말살, 왜곡했으며, 약소국, 열등민족으로 역사를 조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61년이 지난 오늘에도 일제가 조작해 놓은 역사를 그대로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생각하면 민족정기를 잃어버린 한심한 민족으로 오인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민족의 정신세계까지 의심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부터 한 가정의 가정교육은 가족원 개개인의 가족관. 이성관. 인생관. 종교관. 문화관 사회관. 국가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역사문화 교육은 국민 개개인의 인생관. 사회관. 국가관. 민족 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민족정신을 결정하며 민족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은 유혹과 고난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올바른 역사문화교육을 받은 민족은 자국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가지며, 타 민족에게 동화되어 쉽게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 도덕 등의 교과서가 가진 문제점을 살펴보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회장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인 정무총감이 겸임했고, 고문에는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등이 임명되었으며, 위원으로는 이능화. 어윤적. 최남선 등이 활동했다고 한다. 또 고려ㆍ통일신라ㆍ통일신라 이전 시대의 편찬의 실무책임자는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사학과 교수인 이마니시류(今西龍)와 이병도 이였다고 한다.
특히『조선사』에는 신시는 물론 고조선(단군조선), 북부여, 부여의 역사를 말살하고, 위만조선ㆍ한사군이 한반도 북부를 식민지배 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전반기 역사는 말살하거나 부정해 약소국의 역사로 조작했다. 더욱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4~5세기가 돼서야 겨우 고대국가로 진입한 것으로 왜곡했다. 따라서 한국의 환웅천왕의 신시, 고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부여, 고구려, 백제의 역사문화에 관련된 교과서들은 이마니시류(今西龍) 등의 일제식민사학자들과 이병도의 등의 영향력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고조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종서 박사(중앙대. 사학과 강사)는 객관적이고도 실증적으로 왜곡된 한국사를 밝혀내고 있다. 즉, “신시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한 역사이고, 홍익인간은 단군의 건국이념이 아니라 신시의 건국이념이다. 또 준 왕의 조선과 위만조선은 고조선이 아니고, 위만조선의 수도는 왕검성이 아니며, 위만조선과 낙랑ㆍ현도ㆍ진번ㆍ임둔군 등의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해모수는 주몽의 아버지가 아니며, 주몽은 동명 왕이 아니라 추모 왕이고, 북부여ㆍ부여의 역사가 동부여 역사로 축소ㆍ왜곡되었고, 광활한 중국 동부지역을 식민지배한 백제의 역사와 고구려 역사가 약소국의 역사로 축소ㆍ말살ㆍ왜곡되었다.”는 등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축소. 말살. 왜곡되어 왔는데도 이를 추종하는 폐쇄적인 학문풍토가 끈끈하게 이어지는가 하면, 이를 밝혀내는데 최선을 다하는 참역사문화연구회의 활동이 대조를 이루는 현실이다.
아무튼 모든 역사학자와 교수들은 왜곡된 한국사를 바로잡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저 하얗게 쌓인 눈밭 위에 하양 양심을 펼쳐두고 하양 학설을 펼쳐야하지 않을 까 싶다.
출처 : 순천강남문학회
글쓴이 : 밤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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