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 별 집
두레박 삶
밤비 김용수
2009. 10. 20. 16:57
김용수
두레박 삶!
참 많이도 살았다
그까짓 삶, 조금 살려고
이리 엎고 저리 엎으면서
온천지를 쓸고 다닌 한 마리 암 고라니
스스로가 썩혔던 두레박 끈을
지탱치 못하고
툭! 하고 끊어지던 날
쌍고라니 같은 새끼들 먼 산을 보다가
허겁지겁 겁을 먹다가 슬피 설피 울다가
눈물샘 다 말리운채 찢긴 가슴팍 쥐어뜯는다.
참 많이도 살았다 두레박 삶을
쑤셔오는 통증이 시간을 채찍질하고
막혀오는 숨통이 새끼를 부르건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여물벌이가고
혼자서만 움켜잡는 그까짓 삶!
뒤집어 봐도 말짱 도루묵이고
엎어 봐도 그 팔자를 어이 하란 말인가
더 이상 멈추지 않고 커져만 가는 불덩이 혹을
오늘은 맞장을 뛰자
끊어진 다시는 잇지 말자
두레박도 깨뜨리고 밑바닥 물도 쏟아
쌍고라니 같은 내 새끼들 목축일 수 있게
쌍둥이 내 새끼 걷는 길바닥 먼지일지 않게
별것도 아닌 삶! 그까짓 삶을
참 많이도 살았다
이제는 동화 속에서 살자
깨지지 않는 두레박에다
쇠줄로 엮은 질기고 질긴 긴긴 두레박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