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 집

봄비와 꽃비가 내리는 날

밤비 김용수 2021. 4. 6. 09:22

봄비와 꽃비가 내리는 날/ 김용수

봄비가 내리고 있다. 빗줄기 속에서도 벚나무의 꽃비는 멈출 줄 모른다. 봄비와 꽃비가 함께 내리는 4월 2일이었다. 평전, 송수권 시인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고흥군 두원면 학림마을 뒤 주차장에서 진행됐었다.

벚꽃 따라 귀천했던 송시인, 그는 한국의 서정시의 대표시인으로 전라도사투리를 시의 표준어라 칭했었다. 아니다. 고흥지역 특유의 방언들을 자신의 시에 접목하면서 정겨움과 한 서린 정감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판소리가락을 타고 있으며, 한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다시 말해 고흥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시로 승화했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 순지역의 정서와 우리의 사상과 얼을 대서사시로 엮어 낸 시인이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달궁 아리랑’과 ‘빨치산’ 그리고 제주도 4,3사건을 그린 ‘흑룡만리’ 등은 대서사시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호남의 3대 정신을 자신의 시세계로 정착시키면서 호남인들의 삶을 대변했었다. 대나무와 갯벌 그리고 황토라는 3대 정신을 주창했으며 전라도사투리를 시로 승화시켰었다. 더욱이 고흥과 순천의 방언을 끌어들이면서 오묘한 언어의 정감을 표출했었다. 하지만 진정 고흥사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고흥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순천으로 유학, 객지로만 떠돌았기 때문이다.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서라벌예술대학으로 진학했었다. 이후 평탄한 교직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는 문학 병을 앓고서 시를 쓰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고향사랑은 남달랐다. ‘사구시의 노래’를 펴내면서 고흥의 역사와 고향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했었다.

그의 인생론을 펼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시인들이라지만 그의 시인행각도 만만치 않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기인의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5주기를 맞이한 오늘, 기념사업회원들의 추모행사는 빗속에서 진행됐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봄비는 그칠 줄 몰랐다. 행사장에는 고흥군의장을 비롯한 의원, 고인의 지인들과 제자들 그리고 유족들이 생전모습을 그리면서 수많은 업적을 열거했었다.

필자와 송시인과는 빗살무늬처럼 닮은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20여년의 시간 속에서 그의 행보를 기억할 수 있고 추억담을 엮을 수 있는 호형호제의 사이였다. 그는 인자했다. 인자무적의 사자성어를 필자에게 각인시켰으며, 정의감에서 우러난 당당함을 보였었다.

차가운 봄비와 함께 꽃비까지 지천을 흩날리고 있는 오늘, 벚꽃을 좋아했던 고 송수권 시인의 수많은 유작과 발자취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싶다. 그는 벚꽃이 피어나는 소리와 지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도 했었다. 그 벚꽃이 서럽게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좋아했었던 벚꽃 잎들이. . .

송시인의 산소를 오르면서“산문에 기대어”라는 누이의 산소도 찾아보았다. 송 시인이 자리한 그 밑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가 영면에 들어서까지도 함께 있고 싶었던 까닭인지, 누이의 묘소를 떠나지 못했다. 그 누이는 다름 아닌 남동생이었다.

‘산문에 기대어’라는 작품을 쓸 당시, 그는 남동생을 누이의 정서로 표현했으며, 자살한 남동생의 설움과 한을 절절하게 표출했었다. 산문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의 문턱이다. 남동생의 죽음과 자신의 삶을 연상하면서 탄생됐던 작품은 고전되리라 믿는다.

잠시 송시인의“남도의 밤 식탁”을 게재해 볼까 싶다. 그의 고향인 고흥사랑의 밤 식탁이 연상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호남사랑과 나라사랑, 그리고 인류사랑은 그의 철학으로 두고두고 빛나지 않을까 싶다.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
눈이 온다

그러니 오려거든 삼동三冬을 다 넘겨서 오라
대밭에 죽순이 총총할 무렵에 오라
손에 부채를 들면 너는 남도 한량이지
죽부인竹夫人을 껴안고 오면 너는 남도 잡놈
댓가지를 흔들고 오면 남도 무당이지
올 때는 달구장대를 굴리고 오너라
그러면 너는 남도의 어린애지
그러니 올 때에는
저 대밭머리 연鳶을 날리며 오너라
네가 자란 다음 죽창을 들면 남도 의병義兵
붓을 들면 그때 너는 남도 시인詩人이란다
대숲 마을 해 어스름 녘
저 휘어드는 저녁연기 보아라
오래 잊힌 진양조 설움 한 가락
저기 피었구나
시장기에 젖은 남도의 밤 식탁
낯선 거집이 지나는지 동네 개
컹컹 짖고
그새 함박눈도 쌓였구나

그러니 올 때는
남도 산천에 눈이 녹고 참꽃 피면 오라
불발기 창 아래 너와 곁두리 소반상을 들면
아 맵고도 지린 홍어의 맛
그처럼 밤도 깊은 남도의 식탁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
눈이 온다
(고, 송수권 시인의 ‘남도의 밤 식탁’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