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조선수군 재건 길"
순천의 “조선수군 재건 길”/ 김용수
12월도 초순이 지났다. 금년도를 마감하려는 민초들의 삶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특히 코로나의 어려운 시국에서 대선정국으로 이어지는 년말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위정자들의 우국충정은 찾아 볼 수 없고 정권야욕만 가득한 12월, 조선수군 재건 길을 상기해볼까 싶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장군의 백의종군 길은 처참했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뼈저린 아픔과 고통의 길이었다.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투옥되었다가 27일 만에 출옥해 벼슬도 직위도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나가야만 했다. 아마도 천 길 낭떠러지를 걷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1597년 3월 4일 투옥돼 모진고문을 당한 후, 27일만 인 동년 4월1일에 출옥한 그에게 백의종군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통과 고난의 길인 줄 알면서도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이라면 묵묵히 걸어가야만 했었다. 의금부를 출발해 동년 6월 3일, 권율 도원수를 만나고, 8월 3일 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받을 때까지의 행로는 참으로 가혹했었다.
백의종군 길에서 홀어머니의 부음소식과 사랑하는 아들 면의 죽음은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었고 고독감과 쓸쓸함을 홀로 달랬었다. 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은 속으로 삭히고, 장수로서의 길과 어버이로서의 길을 걸어야만 했었다. 더욱이 수시로 닥쳐오는 불행과 고통을 홀로 오롯이 감내해야 했었다.
무엇보다도 순천의 “조선수군 재건 길”은 ‘이순신장군의 사색의 길’이며 재기를 꿈꾼 ‘희망의 길’이었다. 그는“ 기쁘다” “기쁘고 다행이다” “아직도” “오히려” “비록” “해낼 수 있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었다. 그것은 분명,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희망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순천 송치(상동리) 장군바위에서는‘백의종군’의 재기의 의지를 다졌었다. 위기와 시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이루고자 한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아마도 긍정과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실패와 고난이 있더라도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깨우쳐 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는지?
당시, 권율 도원수는 순천부에 있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중 순천은 이순신이 처음으로 권율 도원수와 교감하는 장소였다. 17일간 묵었던 순천부 백의종군 길은 남해 일대의 정찰과 지휘부와 교신을 통해 전략을 재구성한 길이었다.
옛 동료부하들을 상면하고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등 전투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 옥과부터 조선수군 지원병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낙안을 깃 점으로 고흥, 보성, 장흥, 해남, 진도, 완도 등지에서 지원한 수군지원병들의 활약성은 대단했었다. 명량 해전이 그의 첫 방증이었으며, 노량해전에서 그 끝을 맺었었다.
사료를 들춰보면 순천부에서 병사와 무기를, 보성에서 군량미를, 모았었다. 그리고 장흥 회령포에서 배설에게서 판옥선 12척을 인계받아 그 유명한 명량 해전을 치른 것이다. 13척의 조선함대로 330척의 왜적함대를 상대해 대승을 거뒀다는 것은 세계 해전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적 같은 신화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당시의 순천부는 명량 해전을 치르기 위한 준비지로 이순신 장군과는 특별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이순신장군의 활약상은 물론 병사와 병기, 군량미와 군함 등 순천부를 떠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정유재란전쟁의 전체판도를 바뀌게 하는 희망의 땅으로써 소통의 땅이었다.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삼았던 이순신장군은 순천부에서의 긍정적인 사고는 소통의 장소였고 재기의 꿈이었다. 그는 준비와 준비를 거듭했다. 더욱이 나라사랑을 비롯한 부하사랑과 백성사랑 등 사랑으로 이어진 삶을 몸소 보였었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이름은 1000명이 넘는다. 그 중 동료부하의 수가 부지기수다. 그의 동료부하사랑은 남달랐었다. 동료부하 면면을 관찰하는 관심과 사랑은 난중일기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충효사상과 사랑정신은 존경심으로 이어졌었다. 다시 말해 신뢰받는 최고의 군대를 만들고 인재를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구례에서 순천에 이르는 백의종군 길에는 과거의 부하들인 손인필, 이원춘, 정사준, 정명원, 이기남, 신흥수, 등의 이름이 나붙고 있다. 그들은 삭탈관직으로 백의종군한 이순신을 극진하게 모셨던 사람들이다. 평소 그들은 이순신 장군과 사랑을 바탕으로 진정한 소통을 했었다. 대부분 인간관계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뜻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코로나 시국과 대선정국이 겹친 상황에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조선수군 재건 길’을 걸으면서 옛 정서를 느껴보라고 말이다.
그 길은 세계 해전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의 밑그림을 그리게 했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얼이 살아있고, 충효사상이 있는 길이다. 이 충무공의 사랑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길로써 유서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