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갈밭에 첫눈은 내리고
첫눈이 내렸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순천만은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풍광이었다. 밤의 시간을 빼앗아 찾아와서인지 더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승용차 불빛에 비친 갈대꽃은 또 다른 설화로 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순천만을 찾아온 철새 때는 추위와 눈보라를 아량 곳 않고 어둠 속에서도 먹이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선착장에 정박한 탐조선과 유람선은 까맣게 보이는 해수로 위에서 흔들거리며 주인 없는 허전함과 손님 없는 외로움에 젖고 있었다. 해수로가 흐르는 물줄기 끝에는 어부들의 그물망과 나무말뚝들이 회색빛에 사로잡혀 우두커니 서있는 듯 했다.
문득, 하얀색을 좋아하고 白衣를 즐겨 입은 민족혼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 그 유래를 살펴보자.
옛날부터 우리 민족을 백민(白民)이라고도 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부여부터 삼국·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래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흰색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숭배사상이 강한 우리민족에게 광명을 표하려 색이었을 것이다. 특히 흰색을 신성시하고 백의를 즐겨 입었던 것은 더럽고 추함을 멀리하고 깨끗함을 추구하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흰색은 순색(純色)이라고 하여 청정·순결 또는 광명과 도의의 표상이 되어 신성한 빛을 뜻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흰색· 흰옷 숭상은 뿌리 깊은 것으로, 민족정신을 뜻할 만큼 사랑을 받아왔다. 따라서 白民은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고 더럽힘을 모르는 민족이다.
하지만 요즘에 회자되고 있는 소식은 백의정신의 뜻을 져버리는 사건으로, 더럽고 추한 비보들이 온 세계를 들썩이고 있다. 즉 황 교수의 줄기세포에 관한 사건도, 국정원의 도. 감청 사건도, 국익에는 보탬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백민을 우롱하는 촌극으로 비쳐지고 있다.
며칠 전이었다. 호주로 이민 간 친우로부터 전화가 왔다.
“해적의 나라에서 신사의 나라로 바꾼 영국과는 정반대로 한국은 백의민족의 혼이 흑의민족의 혼으로 변해가는 가 보다. 참으로 더럽고 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튼 눈 내리는 순천만의 밤은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고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설화 핀 은세계를 누비며 하얀 마음만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