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별 집

[스크랩] 미국 노포크市 "맥아더 장군 기념관"소장/6. 25 천연색 사진 발굴

밤비 김용수 2006. 1. 15. 19:55

미국 노포크市 "맥아더 장군 기념관"소장
6. 25 천연색 사진 발굴
- 다시 살아나는 선배 부모 그리고 우리의 모습들 -

2. (제2탄)사회, 겨제도 포로수용소, 휴전




공보처가 제작한 국군장병 위문 포스터와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품.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 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전쟁중에도 시장경제는 어김없이 작동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마비된 관계로 사고 팔 물건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노인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 포로들이 제작해 걸어 놓은 선동 포스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인민군 포로들이 철조망 안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
포로들이 먹을 밥을 삽으로 퍼서 배식통에 담고 있다.




수용소에는 親共,反共 포로들로
갈려 죽고 죽이는 난동이 벌어졌다.
살상행위가 벌어질 때마다 치안유지를 위해
가끔씩 살벌한 경고문이 나붙기도 했다.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세상이 바뀌어도 먹어야 한다.
밥을 타기 위해 배식장소로 가고 있는 포로들.




여유를 되찿은 인민군 여자 포로가 미소를 짖고 있다.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민군 포로.
탁발승처럼 모포를 가슴에 두른 것이 인상적이다.



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거제도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밤마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서울 중앙청 앞 광장에서 반공 포로 석방 환영 집회를 열고 있는 시민들.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출처 : 블로그 > 칼럼니스트 조창용의 세상엿보기 | 글쓴이 : 칼럼니스트조창용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