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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
밤비 김용수
2006. 2. 20. 08:41
![]() ***************************** "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 많은 분들이 난해하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이해하는 데에 보탬을 드리고자 인터넷을 검색하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만, 너무 학술적이고 해설 또한 너무 어렵게들 만 되어 있어, 할 수 없이 소학비천한 제가 직접 설명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습니다만, 더 헷갈리게 할 것만 같습니다. 혜량하시길-----. 물리학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 것을 물질로 보는데, 그 물질 속에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의 성질이 있습니다. "입자"를 공(空)으로 보고, "파동"을 색(色)으로 간주한다면, 그 공(空)과 색(色)이 상호작용을 하여 전체가 하나를 이루면서 물질만물의 실상을 표현합니다. 향기를 예로 든다면 "향기를 입자"로 보고 그 향기를 전달하는 "바람을 파동"으로 본다면, 그 "입자와 파동" 즉 “향기와 바람”이 상호작용을 하여 그 것이 코에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향기"라는 물질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향기"가 있으되 "바람"이 없으면 향기를 맡을 수 없고, "바람"이 있으되 "향기"가 없으면 향기라는 실체의 존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향기라는 "입자"와 바람이라는 "파동"의 관계를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비교 한다면 " 향기라는 입자"를 공(空)으로 "바람이라는 파동"을 색(色)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입자와 파동이 따로 있지만 둘이 별개가 아니듯이, "색즉시공(색=공)"이며 "공즉시색(공=색)"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물질세계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겠는데, 물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이 환상이요 꿈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해석합니다. "색즉시공"은 결코 그런 허무적인 뜻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 전체가 하나를 이룬다는 바로 "연기설"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입자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물질을 관찰함에 있어서 "양자역학"을 이용하는데, 한 입자의 운동에 있어 파장의 속도와 위치를 예측하려면 현재의 "위치"와 "속도"를 알아야 하는데, 이걸 동시에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치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속도에 대한 정확성이 떨어지고, 속도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위치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것을 물리학에선 "하이젠베르그"에 의해 수립된 "불확정성의 원리"라 합니다. 물리학을 제처 놓고,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봅니다. 그런데 영화 필름은 불연속적인 "컷(=장면)"들의 조합일 뿐 연속적인 동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 필름을 빨리 돌려서 마치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하여 관객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신경은 잔상효과라는 특별한 신경구조의 작용이 있어서 불연속적인 "컷(=장면)"들을 마치 연속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신경의 잔상효과란 방금 전에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을 어느 일정 시간 동안 그 영상이 계속 남아 있게 하는 신경구조를 말합니다. 그 잔상시간은 1/16 초라고 하는데, 영화필름은 잔상시간 1/16 초보다 빠른 1/24 초로 돌리다보니 불연속의 "컷(=장면)"들이 모여 치고 박고 지지고 볶으고 하면서 실감나게 하는 것 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현실세계도 우주적 잔상효과에 의한 1/16 초라는 가상의 세계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영화는, 사람의 감각이 얼마나 가상적인가를 알려 주는 실질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상현실 속에 빠져 심각하게 앉아 있다가 극장 문을 나서면서, 그 영화가 “싱겁네” “짜내” 하는 것 입니다. 시신도 말을 할 수 있다면, 화장터의 굴뚝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 참 허무하네-----!” 여기서 영화 속의 한 "컷"을 "입자"로 볼 수 있다면, 그 "컷"을 빨리 돌리는 것을 "파동"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파동"이 연속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면서 "물질"이라는 한편의 "영화" 속에 푹 빠졌다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부질없는 가상현실을 가상으로 자각하지 못한다면, 실재 "진여세계"의 참다움도 알지 못하겠지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각도 일종의 각(覺)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부질없는 현실 속에서 감각을 잘 느끼는 일도(여성의 올가즘도 포함) 진짜 "진여세계"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시작하는 일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이 세계가 부질없고 가상 투성이의 세계라 할지라도, 그 부질없음과 가상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나의 몸으로 느끼는 일에서부터 "깨달음"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우리의 현실세계와 한번 연관 시켜 보겠습니다. 바다에 사는 산호는 값싼 보석으로나 소용될까 우리의 삶과는 직접적으로 큰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가 살 수 있도록 공기 중에서 탄산가스를 제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구상에 원시생물들만 살던 수십 억 년 전의 지구대기 중에는 탄산가스가 너무 많아 고등생물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탄산가스를 제거하여 고등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산호입니다. 공기 중의 탄산가스와 바다 속의 칼슘을 결합하여 석회석을 만든 것이 바로 산호이고, 이 석회석은 시멘트의 원료로서 건축물의 재료가 되었으니 산호와 사람의 삶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산호뿐 아니라 독사나 지네, 거미, 파리는 물론 박테리아마저도 다 저마다 맡은 바 역할이 있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색즉시공"은 이러한 현실세계를 포괄하는 적극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가 우리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연기설”을 주장하느냐고 누군가가 불교를 공격했지만, 이것은 머리털이 하나 빠진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냐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머리털이 하나 둘씩 빠진다는 것은 머리세포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경고 하는 것이므로, 대머리가 되기 전에 미리 머리세포를 건강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연기설은, 미물(微物)이건 무생물이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어찌 함부로 생명 있는 것을 죽일 수 있겠으며, 생명 없는 것이라 해서 어찌 함부로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적 윤리의 핵심을 이루는 “자비”와 “보시‘의 행위는, 바로 전체가 더불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공사상(空思想)을 깨달으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것은 모든 물질세계의 실상을 표현하는 말이며 적극적인 윤리를 가르치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색(色)이 아닌 공(空)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본다면 깨달은 자들이 너무 많이 득실거려서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만, 다행히 색(色)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 세상은 오히려 참 재미있는 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 이해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도 부질없는 일-----. *********************** |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연꽃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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