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피어나는 못을 바라보며
김 용 수
장마가 시작됐나 보다.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이슬비가 내리다가, 햇빛이 나면서도 비가 내린다.
이런 날씨를 보고 ‘호랑이 장가드는 날, 아니 ’여우가 시집가는 날로, 우리민족의 토속적이고 정겨운 말들이 잊혀지지 않나 싶다. 또 그 의미를 새겨 본다면, 하늘의 변덕스러움과 신기함을 우리의 토템사상에 비유하면서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구름 사이로 잠깐 내비치는 햇볕을 호랑이 신랑으로, 그 틈바구니 사이로 내리는 비를 여우 신부로, 비유하면서, 무지개까지 등장시켜서 축복케 한 “호랑이 장가가고 여우 시집가는 날”을 맞노라면 왠지 정겹다.
오늘은 장맛비가 내리는 낙안성에 여우볕이 들었다. “호랑이 장가가고, 여우시집 가는 날“인가 보다. 이런 날은 파와 풋고추를 숭숭 썰어 부친 파전을 먹고 옛사람들의 흔적을 더듬고 싶다.
무엇보다도 비 내리는 낙안성 연못에 피어나는 연꽃의 유래와 연꽃을 가까이 해야만 했던 선인들의 흔적과 이야기를 쫒고 싶다.
연꽃은 인도의 고대민속에서 여성의 생식을 상징하고 다산(多産), 힘과 생명의 창조를 나타낸다. 또 풍요·행운·번영·장수·건강 및 명예의 상징 또는 대지와 그 창조력, 신성 및 영원불사의 상징으로도 삼았다.
불교의 출현에 따라 연꽃은 부처님의 탄생을 알리려 꽃이 피었다고 전하며, 신을 연꽃 대좌에 앉히는 풍습도 생겨났다고 전한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불교 전파 이전부터 연꽃이 진흙 속에서 깨끗한 꽃이 달리는 모습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표현하였고, 종자가 많이 달리는 현실을 다산의 징표로 여겼다.
특히나 연꽃은 진흙에서 자란다. 하지만 연꽃은 진흙에서 나와서 물 위로 피어오른다. 그때 연꽃은 태양을 만나고 하나의 초월적 마음을 갖는다.
어찌 보면 진흙은 연꽃 없이 존재할 수 있어도 연꽃은 진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연꽃은 불교에서 깨달음과 지고지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 연꽃은 더러운 물속에서 자라나 깨끗한 꽃을 피우는 식물로 청정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더욱이 연은 꽃이 시들면 씨앗이 영그는데, 이를 연과(蓮果 : 연꽃의 열매) 라 부르고 이 소리를 빌려 連果(연과 : 과거에 연달아 합격하다)라는 뜻으로 쓰고, 물속에서 뿌리가 굳게 박혀서 가지가 번성한다는 뜻을 나타내어 本固枝榮(본고지영)의 뜻으로 쓰인다. 연뿌리만 그리면 우단사운의 뜻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나타낸다.
아니나 다를까. 낙안성에 피어나는 연꽃을 보노라니,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무안의 회산백련지가 떠오른다.
수 만평의 저수지에 백연과 홍연. 가시연꽃. 수련 등이 뒤덮으며 자라고 있는 모습은 과히 바다를 넘볼 수 있게 한다. 여름이면 초록 연잎의 바다를, 가을이면 하얀 백련꽃 바다를 연상케 한다.
돌이켜 보면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저수지로서 면적은 약 10만여 평이나 되는 연꽃 서식지로서, 이는 30평짜리 아파트 3,300개 이상 합한 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이 백련지와 연관된 선인들의 행적을 쫓다보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초이선사. 정약용. 윤선도를 비롯해 혜장선사. 여러 고승 등이 연꽃과 관련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한 흔적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처럼 장마철에 피어나는 낙안성 작은 연못 속 연꽃은 동양최대를 자랑하는 무안의 백련지를 연상케 하고, 선인들의 발자취와 함께 진흙 속에 핀 연꽃철학을 더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