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자가 되지마라
무엇보다도 “사이비자(似而非者)가 되지 마라”는 성인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겉이 반질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볼 때, 경계심을 가져라”는 말은 내 어렸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다. 한학을 깨우쳤던 어머니는 고사 성어는 물론 성인. 군자의 이야기들을 밤마다 들려주었다. 아니 비 오는 밤이면 더욱 그러했다. 전을 부쳐오고 콩을 볶아 주면서까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似:같을 사. 而:어조사 이. 非:아닐 비. 者;놈 자“는 어머니의 교훈이 아니었나 싶다.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르고, 진짜같이 보이나 실은 가짜인 것을, 철저하게 배척했던 어머니의 교훈이었나 싶다.
언제였을까? 일곱 가지 사이비 성품을 정밀하게 논할 때가 있었다. 그럴 듯하지만 가짜인 사이비를 살펴보자. 첫째,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이는 막힘없이 흐르는 듯 하는 것이다. 둘째, 알고 있는 이치는 적은데도 제시하는 단서는 많은 사람이 있다. 이는 마치 박식한 이해가 있는 듯 하는 것이다. 셋째, 빙 둘러서 말하여 다른 사람의 뜻과 합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마치 찬성하여 이해 한 듯 하는 것이다. 넷째, 맨 뒤에 말하여 어른인 듯 처신하며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여기는 바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 이는 마치 판단을 잘 내리는 듯 하는 것이다. 다섯째, 논란거리를 피하여 응답하지 않고 마치 여유가 있는 듯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은 잘 모르는 것이다. 여섯째, 서로 통하기를 원하면서 입으로만 알아듣는 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마치 기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 이기려는 마음 때문에 사실적 근거도 없으면서 궁색하지만 묘한 말로 둘러 대고, 자기가 불리해지면 남의 말 꼬리 잡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 이는 마치 이치상으로 굽힐 수 없는 듯 하는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사이비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그렇다. 7가지의 사이비 외에도 사이비에 해당되는 언행들이 부지기일 것이다. 그 사이비를 경계하면서 자신의 언행까지 삼간다면 사이비에 대한 경계심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만장(萬章)이라는 제자가 맹자에게 묻는 사이비에 관한 문답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한 향원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을 가리켜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라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 또 집에 있으면 충심(忠心)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는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는 사이비에 비추어,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아악(雅樂)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이처럼 사이비자는 예부터 진실과 덕을 혼란시키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현 사회일각에서 일고 있는 사이비제거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