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대단한 나라, 호주 땅을 “맛 뵈기”로 다녀왔다.
세계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히는 시드니는 푸른 바다와 어울리는 도시가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어 이방인에 발목을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이탈리아의 ‘나폴리’ 역시 아름다운 항구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지만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를 비롯, 블루마운틴, 시드니 수족관은 잊혀 질 수 없는 추억의 장소였다.
시드니의 바다는 파랗고도 하얀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오고 산에는 유칼립튜스가 내뿜는 산소로 인해 하늘과 산을 가름하는 “블루마운틴”을 형성해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저리도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람들의 입에서 연발 쏟아지는 탄성으로 더욱더 아름다워지는 시드니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가 관광자원이었다.
호주는 2백 여 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아름다운 경관과 정서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여유 있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 속에서 풍요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명언을 떠 올리게끔 하는 호주의 복지제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노인들이 살고 있는 실버타운과 경로회관에는 깨끗하고도 말끔하게 잘 정리 정돈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내구조와 집기들도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게끔 시설돼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했다.
특히 호주의 복지제도는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이 나오고, 노인에게는 경로수당이 지급되며 학생들에게는 교육수당이 지급되는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사람이 낳아서 죽을때까지의 복지혜택을 누려야함을 말한 것이다. 또 미국 3대대통령인 제퍼슨은 사람은 모방적인 동물로, 사람은 남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하기를 배운다는 뜻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모든 교육의 근원임을 깨닫게 한다고 설파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전라남도 소방관들의 호주 시드니 체험은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게 했으며, 엄청난 산지식을 얻게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즉, 부부동반내지는 가족동반을 한 소방관들의 호주 시드니 체험은 부부사이의 화합은 물론 가정의 화목을 불러일으키는 체험의 장으로 이어졌었다. 다시 말해 소방관들의 봉사와 희생정신과도 흡사한 유칼립튜스 나무의 이용도와 그 작용들을 직접 보고 듣고 먹는 체험 등을 체험했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필자도 “지구촌 소방수”라는 시상을 떠 올려 졸작을 쓰게 됐으며, 소방관들의 분위기에 젖어 살가운 감정과 감성을 느꼈다.
“지구촌 소방수”
호주 땅에는 “유컬립튜스”가 / 지구촌 소방수로 춤을 추고 있다 / 척박한 곳에 뿌리내려 / 껍질 벗어 진화하고 / 버팀목으로 자리한 / 유컬립튜스는 사라질 수 없는 지구촌 소방수다 / 이파리 앞, 뒷면으로 / 햇빛 받아 산소 내뿜고 / 숲도 이루고 블루 마운틴도 만든다 / 죽어서도 살고 있는 유컬립튜스는 / 굵직한 몸통 내밀어 기둥 받히고 / 흐르는 수액까지도 보호막으로 감싸고 / 언제나 지구촌 소방수로 지켜보고 지켜 서서 / 하늘에서 곡예 하다가 / 땅에서 춤을 추다가 / 오늘 밤 / 시드니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있다 (2007. 6. 2 시드니에서)
이처럼 전라남도 소방관들의 호주 시드니 체험은 동료직원들의 화합은 물론 부부간의 화목과 함께 가정의 평화를 누리게 하는 활력소가 됐다. 아니 죽어서도 살아있는 유칼립튜스의 삶을 터득 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어쨌든 호주 땅의 유칼립튜스는 소방관들의 붉은 넋을 유감없이 피워내고 있었고, 소방관들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대변했으며, 이들 가족들에게 무한한 교훈을 얻게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