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의 본전 통을 아시는지요? 순천시의 공마 당과 향교를 아시는가요? 순천시 매산 등을 아신가요?”
조금은 멋쩍은 질문이다. 하지만 순천시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서문 쪽에 위치한 원 도심거리로 지금은 “문화의 거리”다.
비록 낡고 허름한 건물과 함께 나이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인정만은 넘쳐나고 있다. 순천의 인심은 역시 원도심인 ‘본전 통’인심으로 順天心이 아닐까 싶다.
본전 통 사이사이를 돌아가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옛날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기와집을 들어서면 옛날 향수는 물론 옛정취가 물씬 풍긴다. 더욱이 박공집과 4칸 접으로 지어진 기와집들은 현대인들이 보기 드문 대가족들이 살았었던 흔적들이 고스라니 남아있다.
특히 기와집들의 정원을 살펴보면 작달막한 정원석을 비롯해 가족건강을 상징하는 수목들이 곳곳에 식재돼 있다. 목련, 금은목서, 동백, 철쭉, 목단, 작약, 소나무, 향나무 등 가정정원이 조성돼 있다.
지난달이었다. 필자는 문화의 거리에서 살고 있는 김증숙씨(72세, 순천사범학교 졸업)의 가든파티초대로 희락교회 목사와 함께 나들이를 갔었다. 그곳은 바로 김씨가 자녀 3명을 서울대에 보냈다는 기와집 정원으로써 옛 정취가 함초롬하게 젖어왔다.
김씨 부부는 자신들이 손수 만들었다는 매실주와 음식을 차려놓고 돼지고기까지 굽어내는 정성스러움을 보였다. 더욱이 김씨 부부는 문화의 거리를 활성화 시키려는 ‘예화’아주머니를 비롯해 이웃사람들을 불러들여 화기애애한 가든파티를 했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익어가는 대화는 끝이 없었다. 순천의 ‘본전 통’에서부터 시작되어 매산 등과 박난봉, 죽도봉, 삼산이수, 순천만, 낙안읍성, 송광사, 선암사 등 헤아릴 수 없는 옛 이야기들이 꽃을 피웠었다.
그중에서도 자신들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다. 순천사범학교와 광주고등학교 순천고등학교 그리고 간호고등학교와 순천농업고등전문학교 등의 역사와 화려함을 과시했었다. 특히 그 당시의 순천여고교복이었던 교복의 아름다움을 슬그머니 자랑했었다. 세라 복에 하이 얀 타이를 목에 걸친 순천여학생들의 포즈는 참으로 아름다웠었다. 두고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싱싱함을 간직한 여성미의 극치였었다.
게다가 순천의 하얀 목련꽃은 순천여고의 교복을 연상하고 순천사람들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른 봄이면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문화의 거리에서부터 신도심의 거리까지 하얀 목련꽃이 피어나면 거리마다 온통 우유 빛이다.
이외에도 문화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전통문화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또 누구일까?
인문학을 연구하고 詩를 쓰는 사람, 석연경 시인을 만났었다. 그녀는 ‘문화의 거리’를 사랑하므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시를 쓰고, 그곳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며 그곳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쓴 “독수리의 날들”시집에서 보았듯이 그녀는 불심에서 우러난 연기설과 우리의 신체를 은유로 한 몸 시를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문화의 거리에서 미술, 평론 등 다양한 문학예술을 펼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의 졸 시, ‘번지는 잉크방울’을 게재해 본다.
여름이 푸르고 푸르게
익어 가고 있다
하얀 교복상의로 튕겨버린
파란잉크방울이 번지고 있다
안티로 지켜보는 눈빛이 싸늘하고
먹튀로 배어드는 맘색이 저려온다
하수구에 빠져 허우적대는 언어처럼
안티의 합창, 시궁창 냄새로 지독하고
19살 노동자의 가방 속 라면봉지처럼
숨죽인 침묵, 힘없는 죽음을 부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만학 꽃 피우는 캠퍼스 시간
책상머리 맞대고 정담 나누던 시간들이
흐른 시간 뒤에서야
옛 시간이 그리운지라
낙엽 구르고 밟는 소리를 들을 것인가
바람소리만 붙잡는 나목을 지켜 볼 것인가
검푸르른 여름에는 모르겠지
낙엽지는 가을 오면 눈치 챌까
바람부는 겨울가면 알까 몰라
하얀 교복상의로 튕겨버린
파랗고 파란 잉크방울의 번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