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 집

봄비내리는 순천만을 걸으며 / 김용수

밤비 김용수 2018. 3. 20. 09:19


파릇한 봄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 내리는 거리마다 싱그러움이 넘친다. 그 싱그러움이 피부에 와 닿는 순천만을 걸어보자. 그곳에는 파릇한 새싹들이 쫑긋쫑긋 솟아나고 있는가 하면 철새 떼의  날개 짓을 볼 수 있다. 아니 봄 향기를 듬뿍 맡을 수 있을 것이며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순천, 그곳에서 살기 위해 주거지를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면서도 뭔가 조금은 아쉬운듯하다. 산 좋고 물 좋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순천에서도 가끔 상처받는 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탓 타령으로 일관하는  그릇된 습성이 있다. 그래서 예부터 못되면 조상 탓이고 잘되면 자기 탓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까닭일까? 최근 언론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글에 대해 다수의 순천시민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烏飛梨落’으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분위기에 편승했다면 소중한 순천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순천을 사랑하는 한 시민의 소리를 반추해 볼까 한다. “봄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개헌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는 대통령의 굳은 의지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역사회는 이를 담아낼 준비가 돼 있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지방분권시대로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6.13 지방선거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가? 연구세심(年久細心)이라더니 나잇살만큼 자꾸 생각이 늘어만 간다. 순천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숙제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말이다.

6.13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요즘 공직사회의 단면과 지방선거에 편승한 분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공직자는 시정발전과 시민편의를 위해 많은 권한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 주어진 공인이다. 따라서 선거철이 되면 공직자의 선거중립의무가 강조되고 이를 어길 경우 그 책임이 뒤따르고 있다.

이번 지역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이러한 현상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발전적 과정인지, 아니면 퇴행적 관행인지, 시민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모든 것이 열려있는 정보화 사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가끔 뜻있는 시민들은 “역사, 교육, 문화, 행정, 교통의 중심지인 순천발전을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며 “하늘에서 내려준 아름다운 힐링도시, 순천을 가꾸는데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거 때가 되면 시민갈등과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것은 위정자들이 유권자를 의식한 선거 전략으로 별의별 말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상대후보를 헐뜯거나 네거티브를 하는 선거풍토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정자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는 물론 표밭다지기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봄비 내리는 순천만을 걸어보자. 잘못된 선거풍토를 탓하면 뭣할까?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면서 순천만을 걸어보자. 그곳에는 풋풋한 갯내음이 풍겨오고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난다. 상쾌하고 싱그러운 대자연의 품속에서 순천을 사랑하는 훌륭한 인재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각박한 현실을 떠나 마음의 여유를 가져봄이 어쩔까 싶다.

비방과 모략보다는 소통과 화합이 넘쳐나는 순천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순천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사그락 사그락
움막지붕 다독이는 봄비소리
옛이야기를 쓰듯
자장가를 부르듯
황토방 틈새를 타고 흐른다

봄꿈을 꾸는지
봄밤에 취했는지
엎치락 뒷치락 온몸을
뒤척이는 그녀
베토벤 영웅을 작곡하듯
과콰콰 쾅
발길질에 나뒹구는 화장도구
어이 하려나
어찌 하려나
예뻐지려고
예뻐 보이려고
꽃을 피우려는 속성을
봄비마저 시샘하는지
모르는 척 모르는 척
애써 지우고 있다

철없이 익어가는 밤
늙은 음악에 빠져드는 움막지기
파랗게 움터오는 기억저편에서
나눔을 알았고
사랑을 배우고
믿음을 섬기고
움막 다독이는 봄비소리
새벽을 부르고 있다
(필자의 봄비소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