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용 수 / 논설위원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소슬바람과 맑은 햇빛이 어우러진 순천만은 가을이 타고 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청색 푸르름을 자랑하던 갈대는 황금빛 외투를 준비하는 듯 연녹색 가을 옷을 걸치고 서 있고,먼 하늘과 먼 바다는 넓고 깊음을 뽐내 듯 푸르다 못해 시푸른 물감을 뿌려대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씩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재와 미래. 과거를 생각하면서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 여행 속에서 생활의 리듬을 타고 그 여행 중에 맺은 사연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져 세월을 거슬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추억의 한 토막을 장식하고파 순천만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마도 순천만은 갈대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정이 소록소록 배어 있고 대자연의 싱그러움이 널려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갯벌과 갈대가 어우러진 순천만은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자연공간을 펼쳐두고 사색의 숲길까지 만들어 주고 있다. 그렇다. 어느 누가 그랬듯이 갈대와 갯벌은 떨어질 수 없는 천생연분으로 공생하면서,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색 밭이다.
순천만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람결에 일렁이는 갈대밭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생각들이 떠오르며 삶의 활력을 찾게 한다고 했다. 또 그들은 사람에게 있어서 사색 밭을 갈구는 것은 지혜를 가꾸는 것으로, 아름다운 생각은 아름다운 추억을 장식한다고 했다.
가을 색으로 물들어 가는 순천만을 보라!
그곳에는 황금빛 들판의 벼이삭 익어가는 소리, 갈대밭 속의 게 고동 기어가는 소리, 아니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이곳의 저녁은 타는 노을이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갯벌과 바다를 굽고 있다.
어쩌면 순천만의 가을은 인생의 황혼기를 대변하는 듯 아름다움과 함께 쓸쓸함마저도 동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격동기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면서 남은 삶을 그리게 하고 색다른 삶을 추구하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들이 깊어 갈수록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뿐 아니라 덕을 베풀며 정도를 걸을 것이다. 특히나 사람들은 등나무처럼 꼬여 사는 생이 길어질수록 많은 생각과 함께 자연의 소중함을 터득하고, 그 속에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이 취해지리라 본다.
이러한 사색 밭을 갈구다가 방원(조선조 태종)과의 친구였던 길재 선생의 옛 詩가 떠올랐다. 그 詩는 순천만 갈대밭에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았더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 당시 방원은 인재를 등용키 위해 친구인 길재를 한양으로 불러 봉성박사란 벼슬을 줬다. 하지만 길재는 그 벼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여생을 마치겠다는 글을 남긴 후, 돌아오는 길에 고려의 옛 도읍지를 보고 이 詩를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이 시를 음미하면서 가을빛에 익는 순천만을, 가을빛에 타는 순천만을, 바라보다 걷다가 껴안고 뒹굴 것이다. 아니 지치고 꼬인 인생의 여행길에서 삶의 배낭을 풀어두고 내일에 삶을 충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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